이전에 글을 썼듯이 나는 헬스와 골프를 병행하다가 오른쪽 어깨에 오십견이란 질병을 얻게 됐다. 때문에 현재는 두 가지 운동을 모두 못하고 있다.
한 두 달 정도 운동을 놓아버리자 겨울에 먹음직스럽게 기름이 찬 방어처럼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배가 나오고 엉덩이가 커지고 얼굴이 커지기 시작했다.
수년간 먼지만 잔뜩 쌓여 있던 애물단지 자전거에 눈이 갔던 것은 사실 고육지책이나 다름이 없었다.
몇 주전 새벽에 자전거를 꺼내 무작정 탔다. 상암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12키로 남짓 정도 될까 한 거리였다. 이후에 아이들에게도 자전거의 맛을 알려주고 싶어서 딸 한번, 아들 한번씩 데리고 한강변 라이딩을 나갔다. 두 번 다 거리는 14키로가 될까 말까한 거리였다.
지난 목요일 새벽에는 반대로 한번 타보려고 했다. 원흥역쪽으로 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 질까 하면서. 그러던 중 내리막에서 자전거 앱을 버튼을 누르려다가 왼쪽으로 넘어져 버렸다. 양쪽 다리에서 피가 줄줄 났고 왼쪽 손과 팔에도 상처가 났지만, 넘어졌을 당시에는 오십견을 앓고 있는 어깨가 너무 아파서 데굴데굴 굴렀다. 뒤따라 오던 어르신이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너무 창피했던 나는 통증이 상당했지만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인 오늘은 결전의 날이었다. 상암을 넘어서 장거리를 한번 뛰어 보고 싶은 로망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럼 어디로 갈까. 그래 목표는 용산으로 정했다. 서울의 정중앙 용산까지 가보는 거다. 집에서 몇 키로 떨어져 있는 자전거 교차로는 자전거 라이더들의 메카다. 거기에 있는 벤치에서 사람들은 물을 마시거나 쉬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요쿠르트 아줌마에겐 노다지 땅이다. 라이더들은 쉴새 없을 정도로 커피, 요쿠르트, 물 등 각종 음료수를 사먹는다. 요쿠르트 전동기 앞 100리터 짜리 쓰레기 봉투가 항상 꽉 차 있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나는 거기에 멈춰서 부스터를 하나 짜 먹었다. 원래 이 부스터는 헬스하기 전에 각성제로 먹던 것이었는데 어깨 때문에 헬스를 할 수 없으니 자전거를 탈 때라도 소진해 보자 하고 갖고 나온 것이었다. 부스터를 먹고 달리니 이전보다는 힘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침을 워낙 일찍 먹었던 터라 당분이 부족한 느낌이 살짝 들었다. 그래도 한강 주변 풍경들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갔던 것 같다. 10시30분 정도에 출발했는데 12시가 가까워 오자 점점 햇볕도 뜨거워지고 배도 고파왔다. 드디어 용산까지 도착했다. 사실 편의점에서 라면을 하나 먹고 싶었지만 더운 날씨에 뜨거운 라면에다 국물을 또 처리할 생각에 햄버거와 파워에이드 2개만 구매했다. 벤치에 앉아서 햄버거를 먹으며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고양시에서 용산까지 진짜 자전거로 왔단 말이지. 믿기지가 않네' 하면서.
하지만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자전거를 돌려 다시 고양시 방향으로 출발하는 순간 큰일이 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몸에 힘이 거의 다 빠져 버렸다. 특히 허벅지에. 11시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던 터라 햇볕은 더욱 뜨거워졌고 다리의 힘은 점점 풀려갔다. 조금 가다가 쉬고 조금 가다가 쉬고를 반복했다. 그러지 않으면 기절할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망원을 지나자 편의점도 보이지 않았다. 잠깐 멈춰 아리수로 목을 축였다. 복횡근도 아파왔다. 현기증은 더욱 심해졌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하지만 페달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자전거를 버리고 집에 갈 수는 없으니까. 쉬다 가다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상암 축구장을 지나 고양시로 접어들었다. 너무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넌 할 수 있다. 여기서 기절하면 무슨 망신이니'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페달질을 했다. 계속 페달질을 하다 보니 출발 직후 부스터를 먹었던 교차로가 나왔다. 바로 자전거를 멈추고 요쿠르트 아줌마에게 미숫가루를 하나 달라고 했다.
아까 먹은 햄버거로는 도저히 당분 보충이 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자전거 도로가 끝났고 나는 바로 땅에 주저 앉았다. 다른 라이더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아랑곳 할 수가 없었다. 26살 때 걷던 국토대장정 마지막 타임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휴대폰 배터리가 1% 밖에 남지 않은 느낌 말이다. 꾸역 꾸역 페달을 밟아서 집에 돌아왔다. 와이프에게 "왜 그렇게 무리해서 자전거를 타냐. 이런 날씨에"라는 핀잔을 들었다. 맞는 말이다. 앞으로는 자전거를 타더라도 새벽이나 해가 진 이후에 타야겠다. 폭염에 장사 없다. 그리고 자전거를 많이 타둬서 기초 체력을 좀 강화해야겠다. 에너지 바와 스포츠 음료수 등도 잔뜩 챙겨야겠다. 암튼 전문 라이더들에게는 별거 아닌 거리겠지만, 자린이인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도전과도 같은 거리를 주파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골퍼가 골프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나도 자전거 라이딩 거리를 늘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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