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초 이사갈 집을 알아보기 위해 와이프와 임장을 다녔다.
새로 조성된 택지지구라 아파트 상가에 부동산중개업소가 5~6개씩 이어져 있었다. 모든 부동산에 사장님들이 앉아 계셔서 약간 부담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나는 남자 부동산 사장님보다는 그래도 여자 부동산 사장님이 싹싹하게 잘 해주실 것 같았다. 와이프에게 "저기 아줌마가 앉아 계신 부동산으로 가자"라고 말했다.
사장님은 매우 바빠보이셨다. "집을 보여드리기 전에 영상 인코딩 버튼 좀 누를게요. 제가 유튜브를 하고 있거든요. 호호"
"강남으로 유튜브 편집배우러 다니고, 드론도 최근에 배웠어요."라고 말했다.
사장님의 안내를 따라 이사갈 집을 몇 군데 둘러보고 다시 중개업소로 돌아왔다. 사장님께 유튜브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니 "00을 누르시면 바로 떠요"라고 말하셨다. "저희 집 매도 가계약이 성사되면 바로 전화드릴게요, 사장님"이라고 말하고 집에 돌아와 사장님의 유튜브를 둘러봤다. 구독자는 500명 안팎으로 전업 유튜버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드론 편집기술이나 음악 등이 매우 세련됐다. 직감적으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구독자가 수익구간인 1,000명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의 유튜브를 보다가 재밌는 영상도 발견했다. 다름 아닌 '벤츠 언박싱 콘텐츠'였다. 지난해 구입한 벤츠를 인도 받아서 딜러로부터 사용법을 전수받는 내용이었다. 그 영상을 보자마자 '상당한 부를 일구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일이 지나 다행히 지금 사는 집을 파는 가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사갈 집 가계약을 위해 중개업소를 다시 찾았다. 사장님은 "제가 58년생 동생이 있는데, 정년퇴직 이후에도 열심히 살고 돈 잘 벌어요"라며 동생 자랑을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사장님이 나이가 82학번(63년생)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장님에게 "사장님,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었다. 사장님은 "저, 양띠에요. 조금 있으면 앞이 7자로 바뀌어요."라고 웃어보이셨다. 55년생이었다. 와이프와 나는 깜짝 놀랐다. '젊게 살려고 노력하면 젊게 살 수 있구나'라는 교훈을 깨달았다.
실제로 사장님은 부동산 대학도 최근에 졸업하셨다고 했다. 와이프와 내게 부동산 주기를 설명해주셨다. 주기가 맞고 안 맞고는 사실 신(神)의 영역이지만, 저 연세에 저렇게 책을 읽고 공부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했다는 게 참으로 멋있어 보였다. 퇴근 후 집에 오면 피곤하다며 씻고 바로 누워서 잡 유튜브 콘텐츠만 보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인생에 은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같은 교훈은 최근에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선배들에게서도 배울 수 있었다. 올 상반기 2명의 선배가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했다. 한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것은 부침이 심한 우리 업종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그만큼 이직이 잦은 편이다. 건너 건너 그분들의 소식을 들어보니 다른 회사의 임원으로 가시거나, 다른 회사의 부장으로 가셔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분들이 62년생이다.
지금과 같은 고령화 시대에는 은퇴란 존재하지 않는다. 퇴직 이후에도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계속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진짜 마지노선으로 보면 국민연금 수령연령인 65세까지는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만 받아서는 살 수가 없다. 가끔 손자들에게 용돈도 줘야 하고, 간간이 여행도 다녀야 한다.
사람이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비단 돈을 벌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년 퇴직 이후에도 일 한다는 건, 스스로 내 가치를 입증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아직도 이 바닥과 시장에서 내가 통하는 구나. 소위 말해 "내가 이 씬(scene)에서 아직 먹어주는 존재구나"라고. 허리가 굽어진 노인이 멋지게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종로3가를 거니는 것도 '아직은 내가 건강하다'라며, 자신의 존재감을 주변에 드러내려는 모습 아닐까.
앞에 예시로 들었던 중개업소 사장님과 두 명의 선배는 시장에서 통용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았다. 만일 대충대충 살았다면, 시장에서 콜(call)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 콘텐츠를 쌓아야 하는 것일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콘텐츠와 무기로 무장돼 있는가. 째깍째깍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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