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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 쪼개기

계엄으로 반으로 갈라진 美 한인 사회

 
 

 

 

A :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인데, 체포를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B : "자기가 먼저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하고 숨고 있잖아요. 그게 잘못된거죠."

A : "일개 판사가 어떻게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을 내릴 수 있죠? 한국은 사법체계가 너무 이상해요." "왜 국가기관 간 충돌을 야기하는 거죠?" 

C: (A를 향해) "본인이 그냥 출두해서 조사 받으면 되잖아" 

B : "대통령이 먼저 계엄이라는 불법적인 일을 했잖아요? 그러니가 본인이 책임져야죠."

A : "야당 대표가 잘못한 건 왜 한마디도 안하세요?" 

B : "그만합시다. 말이 안통하네 정말!!" 

 

최근 출근해 겪은 일이다. 모두 60대가 넘은 한인 교포들의 대화다. 이분들의 관심은 온통 한국 계엄 사태에 집중돼 있다. 

나는 담배를 피지 않지만, 식사를 할 때나 같이 담배피는 곳에서 대화를 할 때, 산책을 할 때, 퇴근을 할 때 

영어식 표현으로 하면 '24/7, around the clock' 계엄만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 나오는 기사만 보고 있다. 

 

A는 내게 "한국 기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한국 언론이고 기관이고 다 갈아치워야해. 안 그래?"라고 동의를 구한다. 나는 옅은 미소만 띈채 묵묵부답으로 대응을 할뿐이다. 

 

나는 한국 뉴스만 들여다보며 산 세월이 15년이 넘었다. 미국에 와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좀 줄이며 정신건강을 챙기려고 했는데 온통 한국 계엄에 대해 얘기를 하는 삼촌뻘 아저씨들 뿐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계엄 얘기를 꺼내고 싶어한다. 거의 고장난 라디오처럼 말이다. 

나는 12.3 계엄 초반에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다가 현재는 뉴스를 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변하지 않고 국가기관 간 드잡이가 오랜 기간 지속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시간에 영어 단어나 표현 하나를 더 외우는 게 실속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분들은 미국에 건너와서 산지 각각 50년, 40년, 30년이 넘은 분들이다. 모두 미국 시민권자들이다. 그런데 진짜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나보다 더 한국 이슈에 매몰돼 있다. 양측 진영에서 하는 유튜브도 보는 것 같다. 

 

내가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라면 한국 이슈에 크게 관심이 없을 것 같다. 되레 미국 이슈, 미국 뉴스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오히려 트럼프나 개빈 뉴섬(캘리포니아 주지사) 등에게 관심을 더 갖는 게 타당해 보인다. 정부 정책이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우스겠소리로 이분들에게 "아니, 미국인분들이 왜 그리 한국 이슈에 관심이 많으세요"라고 언중유골을 날린 적도 있다. 

 

이런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왜 이들은 한국 이슈에만 천착하는 것일까? 그냥 내 상식으로만 생각해 보면 미국 주류사회에 속해 있지 못한 피해의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너무 성급히 접근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본인 삶의 바운더리가 현지인들과 맞닿아 있지 않고, 계속 미국 이슈들을 팔로업 해야 할 필요성과 능력이 없는 탓에 한국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교포는 "이곳에는 빨갱이라는 말을 아무 서슴없이 하는 노인들이 정말 많아요."라고 내게 말했다. 1970~80년대 이민 온 분들의 사고가 냉전 반공주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위 사진은 LA 지역 한글 신문의 1면 톱 기사다.  계엄 사태를 둘러싸고 부부마저 반으로 갈라졌다는 내용의 기사다. 나는 계엄으로 환율이 100원 넘게 올라서 경제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한화로 월급을 받는 탓에 한달에만 몇십만원의 돈이 줄어든다. 

A는 내게 "내가 그래도 한국 사람이잖아"라고 말했다. 이들 교포들은 환율이 올라가면 한국 여행가기 좋아졌다고 오히려 좋아한다. 나와 경제적인 입장이 전혀 다르다. 그런데 왜 그렇게 계엄에 몰두하며 본인들의 사고를 나에게 강요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도 언론밥을 먹은지 15년이 넘었고, 민주주의에 대해 공부한 정치학도 출신이다. ㅎㅎ 

내가 본 미국 교포 어르신들은 화가 많이 나 있고 충동적이다. (내가 본 사람들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는 걸 밝힌다.) 아마 힘든 이민 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뀐 게 아닌가 싶다. 가뜩이나 미친 환율로 생활이 힘든데 미친 환율의 원인이 된 계엄 뉴스마저 보고 싶지 않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